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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소문 黃帝內經素問

책표지
  • 한국어
  • 저편자 : 미상 (미상)
  • 출간년도 : 미상
  • 번역자 : 정창현,백유상,장우창

<<을해자본(乙亥字本) 󰡔황제내경소문(黃帝內經素問)󰡕 >>
  본 연구에서 저본으로 사용한 『懸吐校勘 朝本黃帝內經素問』은 을해자본(乙亥字本) 󰡔黃帝內經素問󰡕의 원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에 을해자본(乙亥字本) 󰡔黃帝內經素問󰡕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다.

(1) 조선본(朝鮮本) 󰡔黃帝內經󰡕의 개요
1) 학계에 보고된 판본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황제내경 조선본(朝鮮本)을 살펴보면 마계흥(馬繼興)의 󰡔中醫文獻學󰡕에서 조선본의 󰡔黃帝內經󰡕이 소개되고 있다. 
  󰡔素問󰡕의 왕빙주본(王冰注本) 중에서 24권본(卷本)의 조선간본(朝鮮刊本)으로서 연대미상의 1종의 간본이 요녕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12권본 중에서는 2종류가 있는데 만력(萬曆)43년 1615년에 내의원(內醫院)에서 간행한 활자본(活字本) 1종과, 그 중간본(重刊本) 1권이 있다고 하였다.(후자는 행우서옥(杏雨書屋) 서목(書目)에 보인다고 되어 있음) 󰡔素問󰡕에 비하여 󰡔九卷(鍼經)󰡕의 조선본으로는 24권본, 12권본 모두 중의문헌학󰡔中醫文獻學󰡕에서는 보고되지 않았다.  
  국내 보고로는 손보기의 󰡔금속활자와 인쇄술󰡕에서 다음의 3종이 있음이 보고되었다.  

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 甲寅字本 (고려대학교 화산문고)
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 姜希顔字-乙亥字 (국립도서관)
新刊補註釋文黃帝內經素問 甲辰字 (일본 다케다문고)

  이상 3종의 활자본 󰡔黃帝內經素問󰡕이 있다고 보고 하였으나 현재 국립도서관에는 을해자본 󰡔黃帝內經素問󰡕이 없으며 기타 판본도 아직 확인 불명의 상태이다. 
  이상의 학계에 보고된 판본 중에서 현재까지 존재가 확인된 것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黃帝內經素問󰡕 내의원자(內醫院字) 목활자본(木活字本)과 그것의 번각본(飜刻本)이다. 마계흥(馬繼興)이 󰡔中醫文獻學󰡕에서 만력43년 1615년에 내의원에서 간행한 활자본 1종과, 그 중간본 1권이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이 판본들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만력43년 내의원본(內醫院本)의 1종의 목활자본(內醫院字)과 1종의 목판본이 소장되어 있는데 판본을 살펴보면 목판본이 목활자본의 번각본임을 알 수 있다. 번각본은 활자본을 뒤집어 붙이고 그대로 새긴 것이기 때문에 글자의 위치와 자열(字列), 모양 등은 동일하나 각수의 솜씨에 따라 획이 일정하지 않으며 칼자국 등이 나타난다. 이 내의원본들은 통훈대부(通訓大夫) 내의원(內醫院) 직장(直長)인 이희헌(李希憲)과 윤지미(尹知微)가 교감한 것이다. 권말(卷末)에 관함(官銜)과 성명(姓名)이 표기되어 있다. 
  현재 󰡔黃帝內經素問󰡕 내의원자본(內醫院字本)의 소장처는 국립중앙도서관 외에도 동국대, 연세대, 계명대, 인수문고, 상웅문고, 산기문고, 성암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2) 학계에 미보고된 판본
  손보기의 󰡔금속활자와 인쇄술󰡕에서 을해자본 󰡔黃帝內經素問󰡕이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기술되어 있으나 현재는 목록에 없다. 그러나 일본궁내청서릉부(日本宮內廳書陵部)에서 소장하고 있는 을해자본 󰡔新刊黃帝內經靈樞集註󰡕를 2004년에 마이크로필름으로 복사하여 소장하고 있다. 

(2) 을해자본(乙亥字本) 󰡔黃帝內經素問󰡕
1) 을해자본(乙亥字本)의 개요
  을해자(乙亥字)라고 하는 것은 세조 원년(1455, 을해년)에 강희안(姜希顔)의 글씨를 자본(字本)으로 하여 만든 동활자이며, 을해년(乙亥年)에 만들었기 때문에 을해자(乙亥字)라 한다. 금속활자의 경우 한번 주조하기가 쉽지 않은 사업이기 때문에 한번 만들면 그 활자가 마멸될 때까지 오랜 동안 사용하게 되는데 을해자(乙亥字)의 경우 1455년 이후부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선조(宣祖) 전기까지 사용되었다. 
  특히 명종(明宗), 선조(宣祖) 초기에 이르러서는 활자가 마멸되어 보자(補字)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활자의 상태와 그 책의 상태, 지질(紙質), 책 판심에 있는 어미의 모양 등 여러 가지 근거에 의해 책의 시기를 추정하게 된다. 선조(宣祖) 초기에는 대량의 을해자(乙亥字) 보주(補鑄)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2) 을해자본(乙亥字本) 󰡔黃帝內經素問󰡕의 간행(刊行) 시기
  을해자본 󰡔新刊黃帝內經靈樞集註󰡕는 정확한 간행연대를 알 수 없으나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을해자(乙亥字)의 형태와 책의 상태를 파악하여 명종(明宗) 연간으로 추정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을해자활자본과 을해자목활자본이 함께 유행하고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필요하다. 
  다만 을해자본 󰡔黃帝內經素問󰡕의 간행 시기에 대한 고증은 자형과 판본 형식을 통한 비교 자료가 매우 부족하다. 이에 권말(卷末)에 기록되어 있는 교정자(交正者)와 감교자(監校者)의 관함(官銜)과 성명(姓名)에 따라 고증해보면 을해자본 󰡔黃帝內經素問󰡕은 대략 1554년에서 1557년 사이에 간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현재까지 보고된 내의원목활자본(內醫院木活字本) 󰡔黃帝內經素問󰡕이 만력 43년 1615년(光海君 7년)에 간행되었으므로 이보다 58-61년 정도 앞서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해군(光海君) 때에 다시 간행한 이유는 오랜 전란으로 의학 전적이 많이 소실되어 새로 간행 보급할 필요성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백유상. 乙亥字本 󰡔黃帝內經素問󰡕에 대한 조사 연구.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2011.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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