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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 한국어
  • 저편자 : 정약용 (丁若鏞)
  • 출간년도 : 1798
  • 번역자 : 소재진
  • 판사항 : 활자본
  • 형태서지 : 1冊/ 四周雙邊/ 有界/ 3行28字/ 上下向黑魚尾/ 26.1×16.7cm

1798년(정조 22) 경에 정약용(丁若鏞)이 자신의 의학이론에 대한 견해를 논술한 책이다.
처음 간행된 원본은 현존하지 않으며 정약용의 저술 모음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실려 있다. 1938년에 정약용의 외증손의 아들인 김성원(金誠源)이 편집한 편집본이 정인보(鄭寅普), 안재홍(安在鴻) 등이 교정한 『여유당전서』 중에 『마과회통(痲科會通)』의 뒤에 실려 있다. 정약용은 조선 정조~순조 때의 문신이며 의사로,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이며 나주 사람이다. 1762년(영조 38)에 출생하여 정조 13년 기유문과에 급제하였고 관직이 승지, 부호군에 이르렀다. 순조 원년의 천주교 박해 때 강진에 유배되어 다산의 기슭에 있는 산정에서 18년을 지내면서 그 동안 경세제민에 관한 저술이 수백 권에 달하였다. 그리고 인두종법과 우두종법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실시하였다. 순조 30년 5월 왕세자가 죽을 때, 또 동 34년 11월에 왕이 위독할 때, 두 차례에 걸쳐 특별히 초빙되었다. 1836년(헌종 2) 2월 22일에 사망하니 향년 75세이다.
내용목차를 살펴보면 육기론(六氣論), 외감론(外感論), 이증론(裏證論), 허실론(虛實論), 비풍론(非風論), 제량론(劑量論), 시령론(時零論), 근시론(近視論), 인면창론(人面瘡論), 잡설(雜說), 속집(續集)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이 비록 잡설과 논술이 많지만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정약용이 비교적 일찍 구미의 과학기술에 관한 논저를 흡수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이 책에는 비판적인 논술과 경험을 서술한 내용이 있다. 『소문(素問)』에 대하여 과학적 비판을 가하였으며, 근시(近視), 원시(遠視)에 대한 이론도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근사와 원시는 기혈의 성쇠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서양의학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외에도 맥(脈), 육기(六氣) 등에 대해서도 논술하고 있는데 상당히 한의학에 대한 진보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이 지은 의서로 이 책은 새로운 시각으로 한의학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 서양의학이 처음 들어온 시기에 동서(東西)의학의 접근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三木 榮, 『朝鮮醫書誌』, 1973.崔 秀漢, 『朝鮮醫籍通考』, 1996.
1冊/ 四周雙邊/ 有界/ 3行28字/ 上下向黑魚尾/ 26.1×16.7cm
정약용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마과회통(麻科會通)』 권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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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권 : 소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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