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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유취 醫方類聚

책표지
  • 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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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편자 : 한계희, 임원준, 권찬 등 (韓繼喜, 任元濬, 權讚 등)
  • 출간년도 : 1445-1477
  • 번역자 : 황재운
  • 판사항 : 활자본
  • 형태서지 : 266(264)

※ 본 번역은 보물 1234호로 지정된 한독의약박물관 소장본을 저본으로 인민위생출판사본 등과 교감하여 작업을 진행하였다.

< 의방유취(醫方類聚), 권201 해제 >
 
가. 을해자본(乙亥字本) 불분권(不分卷) 1책(冊)
나. 30.0cm×19.0cm
다. 사주단변(四周單邊), 반곽(半郭) 22.0cm×15.6cm, 유계(有界), 반엽(半葉) 9행(行) 2(字)~17자(字), 주쌍행(註雙行), 흑어미(黑魚尾)
라. 보물 제1234호(지정일:1996.01.19, 관리자:한독의약박물관)
 
『의방유취(醫方類聚)』는 조선 초 국가 주도로 간행된 의학서적으로, 세종대부터 성종대까지 국가의 역량이 집약된 대규모 사업의 결과이다. 세종 24년(1442) 처음 착수되어 3년여의 작업 끝에 세종 27년(1445) 365권으로 초고가 완성되었다. 방서 수집과 분류과정에는 집현전 부교리 김예몽(金禮蒙), 저작랑 유성원(柳誠源), 사직 민보화(閔普和) 등이 활약하였고, 수집 의서 내용의 재편집과정에는 집현전 직제학 김문(金汶), 신석조(辛碩祖), 부교리 이예(李芮), 승문원 교리 김수온(金守溫) 등이 의관 김순의(金循義), 최윤(崔閏), 김유지(金有智) 등과 함께 이를 수행하였다. 마지막으로 안평대군 용(瑢), 도승지 김사철(金思哲), 우부승지 이사순(李師純), 첨지중추원사 노중례(盧仲禮)가 최종 감수를 진행하였다.
이 책은 세종 27년에 편성된 후 문종 원년까지 초사되었고, 세조 5년에서 10년까지 양성지(梁誠之)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 교정과 정리를 하였으며, 성종 8년(1477) 5월에 이르러서야 서평군 한계희(韓繼喜), 좌참찬 임원준(任元濬), 행호군 권찬(權讚) 등을 중심으로 간행할 수 있었다. 간행될 당시에는 266권 264책으로 편성되었으며, 방대한 양 때문에 30질만이 인출되었다. 현존한 유일의 초인본(初印本)은 일본 궁내청 도서료(宮內廳 圖書寮)에 소장되어 있는 1질(12책이 없는 252책) 뿐이며, 국내에는 본 해제본 1책만이 알려져 있다.
해제본은 266권 가운데 201권 「양성문삼(養性門三)」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질병의 예방과 무병장수를 위한 의학적 방법들이 실려 있다. 국내에 알려진 유일한 초판본이라는 희소한 가치가 인정되어 1996년 보물 제1234호로 지정되었다.
『의방유취』 편찬에는 당시 동아시아에 존재하던 의서 대부분이 활용되었으며, 이 가운데에는 현재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 의서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의방유취』를 실전된 의학 서적 복원에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서적들을 교감하는데에도 활용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학자들은 이미 1982년에 전문을 교감하여 현대 활자로 간행하였다. 북한에서는 1970년대에 번역을 완료하여 『의방유취』에 대한 기초 연구를 마무리한 상태이다. 이 번역본은 국내에서도 간행된 바 있으나 우리 실정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활용도는 낮은 편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원문 탈초가 이루어진 정도에 그치고 있으며 좀 더 깊은 심화 연구를 위해 교감과 연구번역이 요구되는 실정이다.

작성자 : 오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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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201 : 황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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